먼저 지난 6월 20일의 대범이.
한창 더울 때라 얼굴이 날렵하다. 원래도 호리호리한 대범이가 더욱 날씬한 계절.
"여름인데 언니 너도 살 좀 빼라옹!"
무리데쓰. 더 찌고 있다...
그리고 그제 밤. (9월 5일)
얘 여기서 뭐하냐고?
사진 왼쪽 위에 보이는 게 냉장고 문이다.
현관에서 시간 때우고 있다가 엄마가 냉장고 문 여시니까 순간이동해서 냉장고 문 옆에 옴.
"언니야, 아줌마가 냉장고에서 나 뭐 꺼내줄까나? 고기겠지? 캔?"
미안한데 꿈 깨...마늘 찧어서 얼려둔 거 꺼낸 거야...
그녀는 현실을 쉽게 인정하진 못했다.
냉장고 주변을 어슬렁거리면서 우리를 압박했다.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까지 야박한 사람은 아니지, 하면서
이번에 한 상자씩 사 온 오리고기, 닭가슴살 하나씩 꺼내 줬다.
(원래도 싼 거 잘 사지만...이번 건 포장부터 싼 티가 났다. 양도 적고...
미안해 얘들아...ㅠㅠ)
유일하게 나를 보는 듯한 얼굴을 찍을 수 있었다.
다행히 반응은 좋음. 대범이는 오리고기 잘 먹는다.
그렇게 세 봉지를 뜯어 잡수시고도 미련이 남았는지
쉽게 떠나지 않고 저렇게 시간을 보냈다.
맨바닥에 대고 꾹꾹이를 하질 않나, 쓰다듬다 보니 배를 보여주질 않나,
이 동네 애교 우수묘 답게 친근감은 표시해줬다.
내가 바깥에서 안아보려다가 대범님께서 성질내셔서 무안당한 건 자랑하지 않겠다...
+그리고 수리가 쥐 잡아서 물고 다닌 건 자랑! (인증샷은 없지만. ㅠㅠ)
사진만 있었으면 엄청나게 자랑했을 텐데 정말 아쉽다.
드디어, 다음 주 화요일 이른 저녁, 이사를 갑니다.
장소는 아래의 고양이 가족이 밥을 먹고 있는 원룸 건물입니다.
저 고양이 가족에게 저 공간과 밥을 주시는
(저에게는 적게나마 월세를 받으시지만 냥님들껜 뭘 받으시는지 알 수 없음.)
은퇴한 노부부가 소유주이며 거주도 하시는 살짝 낡은 건물이죠.
이사갈 방은 지금 제가 살고 있는 방에서도 그 창문이 보입니다.
그리 멀지는 않지만 출퇴근시 지금보다는 훨씬 번거로울 겁니다.
올라가는 길의 경사도 심하고, 버스정거장에서도 멀고요.
평지에, 버스정거장 앞인 큰길에 바로 붙어있는 지금 건물과는 꽤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방을 구경하러 갔을 때 저 고양이 가족이
건물 주차장 위의, 마당 같은 공간에서 저렇게 밥을 먹고 있고,
방을 둘러보고 나오는 현관 앞에서 마주친 집 주인 할아버지가 위생백에 그득히 담은 사료를 들고 계신 모습을 확인하고는,
몇 개의 방을 더 구경하기로 했던 것과
한동안 찾아본 그 여러 방들이 모두 마음에서 지워졌습니다.
그 중에는 이미 내가 이사갈 방이라 여기고 계약 직전까지 갔던 방도 있었고,
그 방을 놓치고는 (계약 직전, 집주인이 월세를 10만원 높게 부르는 충격적인 사태로 포기할 수밖에...)
화도 나고, 마음이 아프기까지 했었는데
그 모든 게 다 사라지고 '내가 여기 살 것 같다.' 고 느꼈습니다.
(내 방이 되려고 그랬는지, 방 보고 한 시간 만에 결정한 제가 계약서를 쓰는 도중에
계약금부터 보냈다며 전화 온 사람이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 와중에 "고양이 밥은 선생님이 주시는 건가요?" 라는 질문을 하고 있었지요.)
물론, 오는 길이 좀 험난하긴 합니다.
하지만 이 건물과 바로 붙어있는 아파트는 상당수가 대형 평수.
저보다 돈이 훨씬 많은 사람들도 이 언덕에 사는 걸요.
그리고 덕분에 공기와 전망이 아주 좋다는, 제가 포기하기 힘들어하는 장점도 있고...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월세가 낮아 부담이 적다는, 정말 중요한 점이 있고요.
곧 이 고양이 가족과 한 주소에 사는 사람이 됩니다.
가끔 커피 한 잔 들고 내려가 냥님네 방 옆에서 커피를 마실 생각입니다.
(사진엔 꽤 커보여도 왼쪽 앞의 고등어, 그 옆 꼬리 긴 녀석, 모두 몇 달 안 된 녀석들이었어요.
몇 마리 더 있었는데, 휴대폰 꺼내 들고 가까이 가는 새 뒤로 숨었답니다.
대범이네 주려고 사 둔 닭가슴살 두 상자 있는데, 몇 개는 저 녀석들 입에 들어갈지도 모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