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범이네2017. 9. 8. 07:30

(빈약한 사진 돌려막기. 이것도 현충일에 찍은 사진이다. 나를 경계하느라 저런 표정을 지었다.

어리다고 호박색 눈을 빛내고 있다.)

 

엄마 말로는 아빠가 처음에는 다리를 고쳐주려고 했고,

모두가 안된다고, 지금은 어려 수술도 힘드니 더 크면

절게 된 다리를 절단하고 세 다리로 살게 하라는 의사도 있었는데

그건 선뜻 내키지가 않아서 중성화만 하고 우리가 거두면서 살려보자, 하던 계획 혹은 기대를 했었다고 한다.

 

우리 가족은 절뚝거리더라도 예쁜 샤론이가 우리 곁에 있길 기대했다.

하지만 역시 절뚝이지 않았다면, 샤론이는 더 많이 커서 나무를 더 잘 타고,

수리처럼 새, 쥐 사냥도 잘 했을 것이다.

 

 

 

엄마 말로는 아버지가 한번 울어버린 적이 있었다고 한다.

다치기 전 샤론이는 아파트 현관이 있는 앞마당이나 화단에서 아버지를 만나서,

뒷마당으로 가는 길에 응석부리면서 '날 안고 가라'고 딱 앉아버리곤 했단다.

그러면 아빠가 샤론이가 내는 그르릉그르릉 소리를 들으며 안고 가서 아파트 뒷마당에 내려주면 휙 나무에 오르는 거다.

"샤론이 이 나무!" 하고 가리키면 휙 달려와서 그 나무에 척 올라가서 한번 내려다보고 또 휙 내려오기를 즐겨한다고, 아버지가 여러번 자랑하셨었다.

 

그러다 다리를 다치고 나니 나무를 못 타 못내 아쉬웠던지,

데리고 나온 날 화단 땅에 뒷다리를, 나무에 앞다리를 걸치고는 아빠를 보며 "앵앵" 하더란다.

그래서 아빠가 걔를 안아 나무 가지 갈라지는 곳에 올려서 아래를 내려다보게 하면서는 울어버리셨단다.

고양이는 추억할 수 있는 동물이라던가,

샤론이는 건강할 때 신나게 나무를 오르고, 높은 데서 아래를 내려다 보고,

또 그런 모습을 칭찬받는 게 그리웠을 거다.

 

 

 

처음엔 병원가는 것도 무섭고 집 안에만 있어야 하는 것도 싫었는데,

겨우 두 번째 병원 다녀오던 날 차에 타니까 잠들고(링거 때문인지, 이제 집에 간다 싶었는지.), 엘리베이터에 타도 겁을 안 내고 빼꼼 나와 문 앞에 앉고,

문이 열리니 자기가 걸어서 현관문 앞에 가더란다.

(엄마가 그 소리 했다가 동생이 캐리어에 안 태웠냐고 버럭댔다는 것은 줄임.)

그리고 집 안이 시원하니까 나갈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되고, (나간다고 하도 야옹거려서 현관문을 여니 문턱에서 더운 바람을 맞고 발걸음을 돌려 에어컨 앞으로 직행.)

작은 방에 컴퓨터를 켜 놓고 엄마가 그 앞에 앉으면 안심하고, 욕실에 물을 쏴 틀어서 대야에 물이 가득 차는 모습을 보는 것을 즐기는, 그래서 대야에 물 받아달라고 욕실에 가서 앙앙!도 하는, 

그 똑똑하고 적응력도 빨랐던 애가 그 기억을 못할 리 없다.

 

베란다 밖으로 나오는 불빛도 거의 없는 깊은 밤중에 나가면, 고양이들이 나무 위, 분리수거용 컨테이너 위에서 놀고 뛰어내리는 모습이 보인다. 몇 시간 전, "나는 담배 피우러 나간다." 하시는 아버지와 밖에 나갔더니 고양이 그림자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게 보였다. 아버지는 담배를 태우시며 샤론이가 잘 타던 나무, 샤론이가 오르던 지점을 짚으셨다. 샤론이 잘했어! 하면 신이 나서 다른 나무에도 휙 올라갔다 내려오고 안아올리면 그르릉그르릉 하던 것도. 샤론이가 남긴 추억과 상처는 아직은 태워지지도, 흩어지지도 않았음이 보였다.

 

 

 

Posted by 오온이
대범이네2017. 9. 7. 08:00

(6월 6일의 샤론이. 정면이 제대로 나온데다 볼도 통통하니 예뻐서 증명사진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찍지 말라고 하악질하는 직전의 모습이다.)

 

샤론이라는 고양이가 있었다.

올해 봄에 태어나서(3월 24일이랬던가...바보같은 나는 또 생각이 안 난다.), 지난 8월 12일에 세상을 떠났다.

아주 똑똑하고, 나무 타기를 좋아하고 또 잘했으며, 어미로부터 '컸으니 독립해 떠나라'는 구박을 받으면서도

우리 아버지가 편들어준 것 때문인지 어미, 외할머니와 함께 있었는데,

(죽고 난 다음에야 이웃으로부터 들은 얘기지만) 주차장에서 후진하는 차에 치어 앞발을 다쳤고,

다친 샤론이를 발견한 아버지 어머니가 애를 붙잡지 못해 병원에 못 데려간 채로 며칠을 보낸 뒤에

겨우 병원에 데려갔을 때는 이미 늦었었던 거였다.

(아마 7월 21일 새벽 사고, 23일 일요일 집에 왔던 것 아닌가...처음 링거 꽂은 사진을 받은 건 25일이다.)

다리는 못 고치고 돌아왔다가 굶으니 링거를 꽂아 며칠 버티고, 며칠 뒤에 또 힘이 없어져서 다시 링거 꽂고는

나흘은 잘 먹고 누고 놀다가 반일 정도를 다시 입맛 없어하더니 결국 완전히 굶기 시작해서는 결국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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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이 얘기를 쓰려고 하니, 이게 내가 직접 본 게 아니라

엄마 아빠가 다 겪고 나서 조각조각 얘기를 들은 거라 정리가 쉽지 않았다.

내가 곁에 있었다면 또 가슴이 더 아파 쓰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원래 정리가 잘 안 되고 횡설수설하는 나의 한계를 받아들여서

일화의 나열이라도 써 보려고 한다.

 

 

이 사진은 맨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대범이, 혀 내밀고 있는 수리, 앞에 흰 장갑 상큼이, 꼬리 세우고 있는 삼색이가 샤론이.

가족의 행복했던 한 때다.

이때만 해도 샤론이가 수리보다 덩치가 확실히 작다. 곧게 쭉 뻗은 다리와 멋진 꼬리의 소유자. 사진 속 얼굴은 수리와 판박이다.

그리고 독립하려는 듯 멀어지다가, 결국 독립한 듯 어느날부터는 보이지 않는 상큼이. 

붙임성 좋은 성격에 털 색깔, 무늬까지 어린 대범이 같던 녀석이라서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알아볼 수 있을 것만 같다.

Posted by 오온이
대범이네2017. 9. 6. 21:48

아로를 오랜만에 만났다!

집에서 누구 있나, 하고 밖을 내다보는데
급식소 왔다 가는 듯 아파트 뒷 길을 걸어가는 녀석이 꼭 아로 같았다.

얼른 닭가슴살 하나 들고 휴대폰만 들고 뛰어나갔더니 차 아래에 앉아 있다.


아로야! 아로가 맞다! 작년 여름에 보고 처음 만난 거 아니야?


나를 알아보는 건지? ​


울 엄마가 네 소식 전해주시더라.
그래 새끼들 잘 키워서 많이 큰 애들도 데리고
급식소 와서 같이 밥 먹고 가고
어쩌다 간식 주면 그것도 잘 먹고 그랬다면서.


오늘은 내가 주는 닭고기도 먹어.

그랬더니 입에 물고 얼른 뒷산으로 올라갔다.



아로는 우리 옆 동 급식소에서 밥을 먹는데,
작년에는 맨 윗 사진에 보이는 컨테이너 박스 아래에서 새끼들을 키웠다.
울 엄마가 그걸 발견하고 먹을 걸 갔다댔다 한다. (나도 집에 와서는 따라간 적 있었다. 노란 새끼들이 팔짝팔짝!)
더 크더니 다 같이 산 속으로 들어가서는
끼니때 일렬로 내려와 급식소 사료 먹고는 돌아간다며 대견해하셨다.

날라리 대범이는 새끼 낳아도 수리한테 다 떠맡기고 혼자 돌아다니면서 맛난 거 지가 다 먹고 다니는데(우리 부모님 주장이며 필자의 견해와 다를 수 있음),
아로는 착실하게 많이 큰 새끼들도 끼고 키우면서 닭가슴살 같은 거 줘도 덩어리 째로 물고 가서 새끼들 갖다주고, 급식소도 여기라고 가르쳐주면서 데리고 다니고 성품이 대범이하고는 다르다 등등...

그런데 내 앞에서도 고기 안 먹고 덩어리 째로 물고 갔다. 누구 줬는지 어쨌는지는 몰라도 또 새끼 낳아 기르는지 모를 일...


이렇게 오랜만이라도 얼굴 볼 수 있어서 기쁘고 참 고마웠다. 길고양이랄지 산고양이랄지, 아파트 마당을 드나드는 애인데 최소 여섯 살은 넘었을테니 그것도 참 감사하고 대견한 일이라 생각한다.

Posted by 오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