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범이네2017. 9. 10. 08:00

(사진이 이렇게 흐리게 찍히는 것도 요즘 세상에 신기한 일일 것.

구형 휴대폰과 찍는 사람 능력의 조화.

주인공은 고양이답게 욕실 앞 싱크대 앞 매트를 사랑하신 샤론.)

 

본가는 아파트인데, 가끔 관리실에서 방송이 나온다. "몇 동 몇 호 몇 살 누구 어린이는 부모님이 찾고 있으니 집으로 돌아가길 바랍니다." 하는 애 찾는 소리. 거의 저녁 식사시간 전이다. 1500여 세대가 사는 아파트 전체에 이런 방송이 나온다는 게 어떨 땐 조금 우습기도 했다. 예전엔 베란다 밖으로 놀이터를 향해 "누구야! 그만 놀고 올라와!" 하는 소리도 종종 들렸었다.

그런데 이 분위기를 잘 이용한 사람들이 바로 우리 부모님이다.

베란다에서 보통 말하듯이 "대범아~이대범, 올라와!" 하면 그 소리를 듣고 대범이가 집에 온다.

처음엔 부르는 사람도, 그걸 듣고 올라오는 고양이도 황당했는데, 친구들에게 말하니 웃으면서 사람 남자애를 부르는 것 같다는 거다.

이대범, 김대범, 박대범을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실제 그런 이름의 인물들도 꽤 있고... 

그래서 (듣는 이웃이 있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나도 놀이터에서 노는 꼬마 소년 이대범을 부르는 거라 생각하기로 했었다.

 

그랬는데 샤론이가 다치고 집에 와 있으면서 대범이가 집에 오는 걸 그리 좋아했다는 거다.

대범이가 오면 힘 없는 몸을 움직여 현관 쪽으로 나가서 문 열라고 야옹-하고,

대범이가 들어오면 대범이 턱 밑으로 몸을 넣어 스윽 몸 전체를 비비고, 대범이가 핥아주면 좋다고 들이대고 있고.

대범이가 먹으면 옆에서 조금 먹기도 하고, 물이라도 할짝거리기도 하고, 그만 먹으려다가 한입 더 먹기도 하고.

그러니 집에서 자꾸만 대범이를 불러댔던 거다. 또 대범이는 금방 뛰쳐나가고도 또 와서 샤론이하고 있어주면 칭찬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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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인 수리에게서 이젠 컸으니 떠나라고 하악질에 물기까지 하는 구박을 당하는 샤론이가 불쌍하다고, 급식 인간들이 수리가 하악질 할 때마다 "수리야! 하지마!" 하는 제지를 했었단다. 처음엔 같이 하악질 해 대던 대범이가 '샤론이를 구박하면 안 되는구나.' 를 깨닫고는 태도를 바꿨는데-수리는 혼날 줄 알면서도 샤론이 구박을 멈추지 못했다고 한다.-, 어느 날 보니 요 샤론이가 우리집에 계속 있는 거다.

작은 방들이나 거실 부엌 곳곳에 매트며 수건이며 깔린 숨을 곳이 많이 생기고, 음식 그릇이 널려 있고 그런 건 다 괜찮았다. 하루 예닐곱번 드나들던 횟수를 확 늘려 계속 드나들며 밥그릇 다 검사하고, 시큰둥하던 츄르도 지가 다 핥아먹고 생선 곰국 남긴 거 다 빨아먹고 할 때 까진 참았다. 그런데 안방을 보니 화장실이 현관이 아닌 안방 가운데 펼쳐져 있고, 또 맛난 것들이 널려 있는 등 딱 봐도 샤론이 살림이 펼쳐져 있었던 거다.

그 안방을 확인한 순간 대범이 혼자서 쉐엑-쉐엑-하악질을 하며 질투에 몸부림을 치(는 것 같)더란다.

겨울이면 안방 티비 앞에서 엄마와 누워 자던 기억이 났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 대범이가 한 행동은, 샤론이에게 질투를 쏟아내 구박하거나, 혼자 삐치거나 하는 게 아니었다.

현명한 대범이는 엄마 앞에서 발라당 뒤집어져 누워 활어처럼 에스자로 펄떡거리며 애교를 부렸단다!

평소와는 급이 다른 애교에 순간 쟤가 왜 저러나, 하고 덜컥 놀랄 정도였다니.

다섯 살이 넘은, 사람 나이로 치면 삼십 대 후반에서 마흔은 될 고양이가 다친 손녀가 사랑받는 게 질투가 난다고 갑자기 애기짓을 해대다니, 말 그대로 푸하하 웃고는 맛난 것과 칭찬, 애정을 줄 수밖에 없더란다.

(대범이는 애교를 부리다가 인간들이 날 보고 있는지를 한쪽 눈을 실눈을 뜨고 확인을 한다. 그게 또 재미있다.)

그렇게, 어떨 땐 이십 분 간격으로 드나들어서-이해가 안 되는 게 그럴 거면서 또 기어이 나간다는 것. 겨울에는 들어와서 철퍼덕 누워 자느라 참을 뿐...- 우리 대범이가 샤론이 아플 때 위로 많이 했다, 대범이 덕 많이 봤다, 소리를 지금까지 듣는다. 그리고 이 슬픈 사건을 겪으며 모두가 체중이 줄어드는 중에 눈에 띄게 살이 찐 유일한 생물이 대범이다.

 

반대로 수리는 샤론이 컸다고 하악질하고 물고 쫓아내려 했던 죄로, "니는 아무리 짐승이라도 새끼가 굶어 죽어가는데 고기가 넘어가나!" 소리를 들으며 마지막 며칠은 건사료만 먹는 벌을 받았다고 한다. 한때 아빠의 사랑을 그리 받았던 수리인데...샤론이 옆에 있느라 엄마가 안 내려가시니 아빠가 사료만 주면 그것만 먹을 수밖에. 입 짧은 수리가 며칠 고생했다.

 

그렇게 샤론이 아프는 중에, 지략가 대범이의 능력이 확인되었다.

 

(사진은 5년 전 대범이. 지극히 정상적으로 건강하며 다만 인간에게 애교를 떨고 있을 뿐인 모습이다.)

 

 

Posted by 오온이
대범이네2017. 9. 9. 08:00

(엄마 휴대폰에 있던 사진. 링거를 처음 맞고 마음이 좋지 않아 안방 구석으로 파고들어 있던 초기 모습이다.

엄마도 나도 저 깁스가 싫다. 필요성도 모를 깁스였지만, 형태도 이게 최선이었을까?)

 

샤론이가 짧은 생을 마감하려 할 때, 나는 내 일로 정신이 없었다.

하루가 어떻게 가고 어떻게 먹고 잤는지, 엉망으로 지냈다는 것만 기억이 난다.

그런데 샤론이가 집에 왔다는 얘기만 듣고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다친 줄은 모르고

블로그에 기록을 하고 신을 냈던 거다.

전화를 하니 엄마가 너무 힘들어하는 목소리였다.

왜요, 물으니 "샤론이가 굶는다"는 거다.

 

지금은 어느새 보통의 동네 청년 혹은 아저씨가 됐지만, 내 동생은 어릴 적 참 많이 아팠었다.

기관지 천식이 심했다. 가볍게 앓는 아이들도 많지만, 내 동생은 유독 심하게 앓았다.

몇 년을 집보다 병원에서 더 많이 지냈는데, 애를 포기해야 할 거라는 말도 들었다는데

그래도 살 목숨이었는지 언젠가부터는 병원에 가는 횟수가 좀 줄었나, 그러면서 애가 크고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고 군대-인기 연예인들이 천식으로 군 면제 받는 걸 곱게 안 보는 이유가 나는 내 동생이다-

도 다녀오고 그렇게 살고 있다.

 

그렇지만 그 성장은 부모, 특히 엄마 가슴을 도끼로 찍으며 계단을 만들어 올라온 길 같을 때가 있다.

사연 중 하나가 외래로 병원에 갔던 날, 아파서 영양실조가 된 애를 보고 주사실에 있던 간호사가 동료 간호사에게

"아, 쟤 또 왔어. 나 쟤 찌를 데 없어서 정말 주사놓기 싫어." 하며 신경질 내듯 하던 말이 슬펐다던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샤론이 두 번째 링거 맞던 날 의사가 이젠 혈관 축소되어 주사도 찌르기 힘들 것이다, 하더란다.

그리고 추가로 놓아줘야 하는 항생제는 정해진 시간마다 놔야 하는데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그러니 입원 시켜라.),

동물들이 주사 꽂은 다리를 움직여서 바늘이 빠져서 다들 다시 데려온다. 안 빠지게 할 수 있겠느냐(그러니 입원 시켜라), 라고도 하고.

굶고 아파서 혈관 축소된다는 걸 처음 들어보는 얘기는 아니지. 

그리고 예전 종합병원 앞 의료상에는 링거 맞는 주사바늘도 병원에서 쓰는 것보다 좋은 건지 가늘다는 건지 뭐라며 팔고 그랬었다. 소아과 병동에 자주 입원한다 하는 집들은 그 바늘을 사 가기도 하고, 애들이 움직여서 바늘이 빠지거나 혈관 터질까봐 부목 만들어 대는 것도 유행(?)이었다. 링거가 유리병이던 시절에 다 맞고 병이 비면 공기가 몸 속에 들어갈까봐 너무 늦지 않게, 또 간호사들 다 쉬는 시간에 갈아달라 하면 눈치 보일까봐 적당한 시간 맞춰 갈아달라 하던 노하우가 다 있는 엄마다. 혈관 못 찾아 애 팔뚝에서 바늘 돌리던 간호사를 멈추게 하고 수간호사가 혈관 찾게 했던 적도 있었다. 엄마가 수의사 그 말을 못 알아듣고 또 애 주사를 못 맞출 리 없다.

불안하고 무섭고 여기가 너무 싫은 샤론이를 (심지어 시설이 좋지도 않은) 병원에 혼자 두는 것도 마음에 안 들고, 그 주사바늘 안 빠지고 제대로 맞출 자신도 있던 엄마는 두말 않고 어서 데리고 나왔단다.

하지만 넉 달 된 가느다란 고양이 발목에 꽂힌 바늘과, 헐떡이며 가는 팔목에 주사바늘 꽂고 있던 어린 아들은 이미 겹쳐버린 후였다.

어리고 아픈 것들은 안 먹는다. 사람 어린 것은 먹기 싫은 이유가 많았고, 고양이 어린 것은 입을 다물었다.

밥숟가락 앞에 입을 쫙쫙 벌리는 것은 사람이고 고양이고 귀엽기 마련이지만, 반대는 가슴 아프다는 걸 다들 알까.

벌써 여러 해 전에 겪었던 그 시간을, 이제는 조금 잊었으면 하고 또 좀 잊은 듯도 한 시간을 샤론이가 엄마에게 다시 다 불러왔던 거다.

불친절했던 그때의 간호사와, 안 될 거라는 얘기와 돈 들일 거냐는 얘기를 한 올해의 수의사, 그리고 상대적으로 미용을 받아 멋지고 그럴싸한 병원 안의 다른 강아지들 사이에서 작고 마르고 초라한 알록달록 삼색이 '길고양이' 우리 샤론이.

엄마는 젊을 때 어린 아들을 키우던 날처럼 또 굶으면서도 맑은 정신으로-"앞에서 안 먹으면 나도 안 넘어가는 건 똑같애."- 돌보고 주사도 잘 맟혔지만 결국 샤론이는 떠나고 말았다.

동생이 살아난 것이 스스로 엄마 공이 아니라 했듯이, 샤론이가 떠난 것도 엄마 과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샤론이가 떠난 뒤 집에 온 내가 그 얘기들을 들으며 무슨 말을 했는지가 기억이 안 난다.

( 병원에서 물어보지 않고 발톱을 깎길래 엄마가 제지시켰단다. 균형 잡기 힘든 애니까 그만 깎고 놔두라고. 진료의 편의와 서비스를 위함인지는 몰라도 샤론이 스트레스는 엄청났을 거라는 게 엄마 생각. 

쓰다보니 떠오르는데, 연관시키기엔 좀 오버일 수 있지만 예전엔 사람 병원에서 영유아 입원 시 머리 빡빡 밀고 링거를 머리에다 놨는데, 그때 돌도 안 된 아기들을 이불에 꽁꽁 싸맨 채로 머리 밀고 주사까지 이마에 찌르는 게 애들에게 스트레스 장난 아니라서 (특히 성질머리마저 별나게 태어나신 내 동생...) 심한 경우에는 안정제까지 투약해서 그놈의 링거를 어린애들 마빡에 찔러댔던 기억이 난다! 쓰다보니 또 성질이 난다!! 딱 만 4세가 되던 내가 그 장소, 애 데리고 가던 모습, 애들 자지러지게 우는 그 방 소리가 아직 기억이 난다 이 젠장할 옛날 병원아! 나중에 그 머리에 주사를 찌르는 자체가 아주 위험한 행위라고 뉴스에 보도됐었다. 그런데 마빡 링거는 머리라는 위치라서만 위험한 게 아니라 그 과정도 지랄맞았다는 걸 외치고 싶다.

결론은 한쪽 발 갑자기 못 쓰게 된 어린 고양이, 밖에서 살다가 실내 장판에서 지내게 된 환자 고양이 미치게 발톱 깎지 말라고 이것들아!!! 라고 화풀이...)

 

Posted by 오온이
대범이네2017. 9. 9. 01:01

​(최근 휴대폰 사진 방출)

늦은 아침 시간, 아파트 뒷마당을 내다보니
정자 위에 누가 누워 있다.


조심히 간다고 가는데도 어느새 발소리에 발딱 일어난 수리. ​


"동네 나이 많은 아줌마들이나 정자 같은데서 누워 낮잠자지, 난 그런 거 몰라. "
옆에 가 앉으니 새침한 표정을 짓는다.

수리야, 너 거기서 그렇게 자니까 진짜 할머니 같더라. 깨서 고스톱이나 윷놀이 할 것 같았어.




이 근처에 벤치가 있던 걸 들어내고 올해 정자를 갖다놨다.
벤치 있을 때도 수리는 의자 위에서 잘 자더니 이젠 정자 위에서 자네.

저 정자 기둥엔 걸레, 마루 옆엔 재떨이, 마루 아래엔 고양이 밥그릇이 있는데, 아마 걸레는 관리실에서 비치해 둔 것일 테고 재떨이는 우리 아버지가(...거긴 금연구역이 아닌 걸까...), 고양이 밥그릇은 누군가가 이름 모를 사료와 위스카스 파우치를 준 이후 며칠 안 치워지고 있었다.

앉아있어보니 시원하고 조용하던데, 그래서 수리가 동네 할머니 포스를 풍기며 자고 먹고 하나보다 싶었다.


Posted by 오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