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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5.27 대단한 책
카테고리 없음2012. 5. 27. 06:36
책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얕고 좁은 독서 범위 안이지만 그래도 최근 몇 년 간 인상깊었던 책 얘기부터 하고 싶다. 그것은 바로 '대단한 책'이다.

호흡이 긴 책이 읽기에 부담스럽거나,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잘 끓인 죽처럼 따뜻하고, 먹기 편하고, 소화시키기에 좋으며, 영양도 풍부한 책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여러 곳에서 소개되어 꽤 많이 알려져 있다.
저자는 요네하라 마리. 출판사는 마음산책.

이 책을 근처 도서관에서 빌려보고 반한 나머지 요네하라 마리씨의 다른 책도 함께 사서 읽었다. 하지만 이 책을 가장 많이 반복해서 읽었고 덕분에 표지 가장자리도 이 책만 낡았다.

서두가 길었는데 이 책은 통역사였던(작고하셨다) 저자가 각종 매체에 실은 서평을 엮은 것이다.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글을 엮은 책이 가지기 쉬운 가벼움을 생각한다면 좀 섭섭할 듯하다. 내게는 장영희 교수님의 책만큼 지면을 신문에서 책으로 옮겨도 그 감동이 진한 글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대단한 독서광이었던 그녀의 독서 영역은 넓고, 특히 아버지(일본 공산당 간부였다)의 영향으로 열 살 때부터 5년간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에 다닌 경험 덕에 공산주의와 그 국가들에 대한 이해도와 애정이 남다르다. 적어도 공산당이 합법적으로 존재하지 못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경우 아닌가. 굳이 국내의 유명한 경우와 비교하자면 홍세화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가 떠오르지만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은 가난하고 고달픈 가장으로서의 외국 생활과 유복하고 행복한 편이었던 요네하라의 청소년기의 분위기는 확연히 다르다. 피지배층 혹은 빈자의 한(恨)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할까.

그리고 서로 다른 문화와 사회 체계를 고루 경험한 덕인지 세계를 보는 눈도 중립적이고 합리적이라 여겨졌다(적어도 내게는). 평생을 결혼하지 않고 어머니와, 많은 유기동물들과 또 그녀의 수많은 책들에 둘러싸여 살았다는데 절대 어둡거나 히스테릭하다거나 지나치게 쿨한 느낌도 없다. 성적인 내용도 표현이 깔끔하고 농담을 꺼리지 않으며, 동물을 생각할 때도 그 동물 입장이 되려 노력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최고 대접을 받는 동시통역사로서의 엘리트 의식이나 '차도녀'의 거만함이 아닌 지혜를 품은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앞에서 밝혔듯이 요네하라씨는 세상을 떠난 분이다. 암으로 돌아가셨는데 투병 과정을 생각하고 또 날짜를 보면서 특히 가슴이 많이 울렸다.
암을 확인하고부터 암 관련 서적에 관한 이야기도 썼는데, 담담한 어조 속에서도 본인이 여럿이라면 다 실험해 보고 싶다는 얘기는 역자도 가슴아픈 부분으로 꼽았고 나 역시 그러했다. 그리고 기시모토 요코의 '암에서 시작되다'의 서평에서는 '나 자신의 일로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내가 소리 내어 울고 말았다. 자신의 두 발로 지면을 당당히 밟고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답고 현명하고 건강해서. '를 읽으며 이 부분을 따로 표시해두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을 처음 읽던 당시 병원을 드나들던 내가 요네하라씨에게 느낀 감정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꼭 소개하고픈 구절이 있다. 이 책에 소개된 기시모토 요코의 '암에서 시작되다'의 내용이다.
'암에 걸려도 그 전과 그 후의 나 자신을 관통하는 분명한 선이 있다. 그것이 분명 바로 나를 나답게 하는 '생명선'인 것이다. 재발하면 어떤가. 재발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내가 나이기 위한 한 줄기 선은 꼭 지키고 싶다.'

큰 병명이 자신의 존재 위를 덮치는 듯한 경험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 깊이 공감할 것 같은 구절이다. 아마, 요네하라씨나 나도 이 부분 덕에 눈물을 흘리고 이 구절을 인용하게 된 것이 아닐까.

더욱 나를 마음 아프게 했던 부분은 바로 여기였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쓴 서평이 실린 날짜는 2006년 5월 18일, 작가 안내에 나온 세상을 떠난 날은 일주일 뒤인 25일이다. 일주일 전까지도 일을 놓지 않고 삶을 지속하고자 했던 사람이 너무 빨리 죽음을 맞이한 것이 그렇게 안타까웠다. 생의 말년을 계속 죽음을 기다리며 보내는 것보다는 사는 날까지 사는 듯이 살고 가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 나이지만, 아마 그녀의 의지가 효과를 발하는 모습도 보고 싶은데다 팬이 된 내가 그렇게 더 깊어진 그녀의 글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는 개인적인 욕심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읽은지 꽤 오래된 탓인지 주로 느낌과 아마도 이 책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작가의 건강 얘기를 썼다. 하지만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과 또 프라하에서 시작되는 공산주의 세계 이야기가 그녀 책의 더 큰 매력이다.
그 부분은 다음 기회에 그녀의 다른 책을 소개하게 된다면 다시 이야기하고 싶다.

그럼 연휴 새벽, 커피 마시면서 쓴 책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 해야겠다.


BlackBerry� 에서 보냈습니다.


Posted by 오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