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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0.14 '일생에 한번은 독일을 만나라' - 1
카테고리 없음2012. 10. 14. 17:55

 

*이 글은 출판사의 홍보용 책을 받아 읽고 쓴 글입니다.

 

 

 

퇴근 후 고기 굽는 연기와 술기운에 불콰해진 얼굴의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다가 돌아온 집에는 리뷰를 신청한 '일생에 한번은 독일을 만나라'가 도착해 있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궈 개운하게 씻고 나와 습관처럼 켜던 컴퓨터 대신 책장을 펼치자 조금 전까지 너무도 한국적인 문화를 누리고(?) 있던 나를 순식간에 한발짝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게 하는 글이 시작되었다.

 

독일에 여러 해째 살고 있는 저자가 숨가쁘게 돌아가는 한국에 머물다 독일에 돌아오면 느릿한 일상과 적막에 어색해진다고 한다. 나는 통유리창으로 된 건물에서 일하고 있지만 밖을 내다 볼 여유는 거의 없다. 끊임없이 드나드는 사람들과 그때그때 처리해야 할 일들을 마치고 나오면 어느새 밝던 날이 밤이 되어있는 것을 잠시 보고는 다시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게 내 평일의 생활이다. 그나마 잠깐씩 접하는 바깥 풍경도 얼마나 달라지는지, 도시 정화 사업인지 무엇인지 몰라도 10년씩이나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불과 작년과도 싹 달라진 거리도 있고 시장에 가보면 바닥이나 간판까지 시에서 모두 교체해 주어 예전의 정취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무터킨더-박성숙의 이 책, '일생에 한번은 독일을 만나라'에 소개되는 많은 도시의 많은 건물들은 예사로 긴 역사를 자랑한다. 기원 전후에 시작되었다는 건축 양식인 파흐베르크하우스로 지어진 건물들은 아직도 시의 철저한 규제와 관리 속에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는 점이 참 부럽다. 160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 아직도 강건하게 유지되는 나라, 그것이 특이한 경우가 아니라 어디를 가나 그런 태도로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대하는 나라. 그것이 독일임을 이 책 상당 부분에서 접할 수 있었다.

 

깨끗하고 세련되고 편리한 현대 한국의 생활 환경. 그런데 대학 내내 내가 존경해 마지않던 교수님은 독일에서의 삶을 그리워하시기도 하고 또 배워야 할 점이 많다는 점을 참 자주도 말씀하셨다. 학생들은 구라파가 어쨌기에요, 하며 웃기도 했지만 쉽게 웃어넘길 수만은 없었다.

내 대학 동기들이 교수님의 구라파 칭찬과 우리 비판을 웃어넘기지 못하는 예가 하나 있다. 대학 때 고층 기숙사가 신축되었던 때였다. 학교 바깥에서도 잘 보이도록, 기숙사는 높고 크고 깔끔하게 지어졌다. 그리고 층층이 가득 학생들이 살게 되었다.

새로 지어진 멋진 기숙사에 들어가기를 기대하고 있던 학생들에게 교수님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눈빛으로 말씀하셨다.

 "독일이라면 저렇게 위험하게 한 곳에 학생들을 모두 모여 자도록, 높고 큰 건물을 짓지 않았을 것이다. 저런 건물에 화재가 나거나 사고가 발생하면 아주 큰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는데......"

 "독일에서는 옛날 작은 건물들에 학생들이 나눠 들어가 공부하곤 했다. 그렇게 해도 충분히 가능하다. 꼭 땅이 모자라는 것도 아닌데 굳이 이렇게 큰 돈을 들여 높은 건물을 지어야 했을까."

 

이 책에 의하면 우리나라와 달리 독일에서는 서민들이 아파트에 살고 먹고 살만 하기만 해도 단독주택에 살 수 있다고 한다. 독일인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정원과 창문을 예쁘게 가꾸고 살면서 하늘도 바라보고 층간 소음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작년 여름,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옥상에 불이 났었다. 아파트 단지 자체도 이 동네에선 큰 편이고, 건물 한 채에 한 동에 150가구가 살고 있는 큰 건물이다. 그런 곳에 불이 났으니, 그야말로 아파트 주차장에는 피신 나온 사람들로 인산인해가 났다. 이중주차된 차들 사이로 여러 대의 소방차가 들이닥쳤고, 화재 현황은 즉시 시장에게 보고되었다. 다행히 불은 인명피해 없이 진화되었지만 전기가 끊어진 집들이 있어 수리되는 며칠간 불편을 겪어야만 했다.

 

어디든 사고는 생길 수 있고, 편리함은 새로 지은 집들이 훨씬 나을 것이다. 그런데 그토록 사람을 편하게 하기 위해 지은 요즘의 우리 건물들이 얼마나 허무하게 사람들을 위험 상황에 가두거나 더 위험하게 몰아넣는지, 사고가 하나씩 생길 때마다 오싹하게 깨닫고는 한다. 새로 지은 높고 편리한 건물, 이런 삶의 태도가 과연 좋은 것일까를 다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은 저자가 로만틱가도를 따라 남에서 북으로 올라가며 쓴 글이 주를 이룬다. 텔레비전에서고 유럽 문화 관련한 책들에서고 지겹도록 접했던 로만틱가도를 따라 남에서 북으로 올라가며 도시를 만나는데, 그 여정이 지루하거나 진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머릿속에는 명불허전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모두 소개할 수는 없지만-또 책을 읽어봐야 그 진수를 알 수 있는 것이기에- 가보지 않고도 그곳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고 역시나 책을 들고 직접 가보고 싶다는 생각 역시 들게 했다.

 

어느새 일요일 저녁이 되었다. 하지만 다음 한 주는 여행을 다녀온 뒤의 새로운 기분으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Posted by 오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