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집으로.
장염인지 몸살인지, 의사도 "뭔가 침입이 있었다"는 몸살이 한참을 기운을 빼서
몸에 발진까지 돋아나고야 추석 전 금요일을 맞았다.
버스 안에서 이미 피곤은 몰려왔고, 나답지 않게 고속버스 안에서 잠도 들었다.
터미널에 마중 나오신 부모님을 뵈니 좋기는 한데 몸은 늘어지고
집에 가서는 동생이 함께 안 와 영 썰렁한 시간을 맞았다.
이번엔 얼마나 잘 지내다 올 거라고 기대를 하고 벼르고 갔거늘
잠, 깨서는 단 것, 다시 잠, 계속 잠, 눈 뜨면 다시 먹고 잠, 그렇게 연휴가 다 갔다.
아까운 고향 집에서의 부모님과의 시간은 힘 없이 또는 짜증스레 "못 일어나겠어요..." 를 여러 번 외치며 흘러갔다.
물론 그 와중에 눈치 빠른 대범이는 수시로 집에 와 -대범이에게는 스마트폰 연동 능력이라도 있는 걸까? 한동안 잘 오지도 않았다면서 어찌 내가 꺼 놓은 알람 시간마다 와서 "앵..." 할 수가 있을까?-잠시나마 깨워 주고, 겨우 힘내서 아버지와 나가기라도 할 때면 대범, 수리, 옐로우, 삼색이 넷이 나와 놀아주었다. 하지만 고향에서나 만날 수 있는 사람 친구들은 단 한명도 못 만났다. 심지어 집에 온 사촌오빠네도 못 보고 잤으니......
하루 미리 올라와서 쉬고 시간 나면 가을 옷도 좀 사려던 계획은 나의 늘어짐으로 모두 무산되고
아픈 어머니가 몸과 딸년(나)까지 달래가며 만들어 담아주신 한 가득의 반찬을 실은 아버지 차로 서울에 겨우 왔다.
그리고 어젯밤, 누워 있는데 이제 몸이 나았나보다, 하는 느낌이 들었다.
정신의 문제였을까? 아니면 이제 몸이 할 만큼 한 걸까?
출근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 쌩쌩하게 일했다.
쌩쌩할 수밖에 없도록, 한가한 평소와 달리 일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하필 이런 날 평소보다 늦게 퇴근했고, 기껏 와 주신 아버지 두고도 바쁜 척을 한 남매에게 아버지는 저녁을 사 주시고는 내려가셨다.
옷장 옆이 냉장고, 냉장고 옆 두 걸음이 화장실인 방이, 아버지 한 사람 나가셨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허전할 수 없다.
그것보다 어제부터 이 포근하고 예쁜 집들과 저 많은 아파트 중 내 집 한 채만 있으면 우리 가족이 다 모일 수 있는데, 하는 망상이 든다.
정작 몇 시간 전에 이 방 관리비로 얼마나 많은 돈을 냈는데...
가끔 스스로를 불쌍하게 생각해버리고 마는, 내가 싫어하는 나의 허영심이 씁쓸하다.
욕심내지 말자, 힘을 내되 무리하지 말자, 받지 않아도 될 고통을 끌어들이지 말자.
이 많은 사랑과 행복을 가지고 누리게 된 것이 내 덕이 아닌 것처럼,
가질 수 없는 것들은 그저 내 것이 아닌 것들일 뿐이다.
힘을 내자, 과욕부리지 말자. 오늘을 행복하게, 지금을 웃으며.
아버지가 집에 도착하실 시간이 다 되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