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18. 2. 22. 18:07



-오늘 아침에 찐빵이는 암컷인 걸로 결론 내렸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다른 고양이들은 넉 달 무렵엔 제법 수컷 태가 났었다.

땅콩도 제법 보이고 얼굴도 약간은 둥글어진다고 느꼈다.

찐빵이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고, 항문탈장 수술 때 회음부가 당겨 올려져 그렇게 보이는 걸로 생각됐다.


...그래도 오늘 대범이 쓰다듬으며 항문 쪽을 유심히 보긴 했다. 이전에 대범이 똥꼬를 관심있게 본 건 수리 낳았을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 아니었나 싶다...



-대범이, 수리는 둘 다 만났다. 다행히 밥도 잘 먹는다.

혹시 못 만날까봐, 혹시 입맛 없어할까봐 모두 두려워하고 있다.

언제든 누구든 나갔다 들어올 땐 "......봤어? 먹나?" 해 왔지만 지금은 더욱 그렇다. 

서로 고맙게도 오늘의 대답 역시 "아이고 이따만큼 먹고, 비벼대고...".


-연설이는 만나지 못하고 있다. 형제들이 모두 떠날 무렵부터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연설이도 죽었을 거야, 내가 묻어줘야지." 하면서 자꾸 찾아다녔다.

몇 번 생각하다가 "엄마, 이미 갔다면 자연스럽게 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잖아요. 원래 그런 거니까." 했더니

"어디 사람이 치울 법한 데 있으면 남들이 욕해. 그 꼴 당하는 거는 또..." 해서 수긍했다. 이미 애들 있던 곳은 다 보셨지만. 

또 나가신다기에 저도 같이 가요, 하고 나서는데 멈칫, "준비물은 안 가져가도 되겠지?"

시신 수습할 것들을 챙겨가야할까 해서 "없을 걸요. 혹시나 보면은..." "그래. 만약에 있으면..."

그렇게 또 먹을 것들만 들고 나갔다 왔다.


-그제 밤을 샜다지만 어제는 저녁 먹고 일찍부터 정말 열 시간은 잔 듯 하다.

그런데도 오전에 머리가 깨질 듯해 타이레놀을 먹었다.

그러고 점심 때는 방에 뒀다 미처 안 치운 닭가슴살, 츄르 봉지가 생각이 나 희석한 락스로 소독했다.

사후약방문이란 말이 딱이구나, 그 대청소할 때 이건 또 뺐었네, 그런 생각을 했다.

그 닭가슴살 츄르 담겨있던 큰 봉지도 씻어 베란다에 널어뒀다 보니 찐빵이 이빨 자국이 여럿 나 있었다.

그래서 요거 찐빵이가 깨문 자국이라고, 우리 찐빵이 작품이네, 하며 같이 웃었다. 그러고는 엄마는 조금 울었다.


-오전에 자꾸 코뽀뽀를 하는 내가 귀찮았는지, 양손으로 내 두 눈을 눌러 코뽀뽀를 저지하던 찐빵이 생각이 나서

귀엽고 우스워 웃었다. 그러고는 울었다.

아직은 자주 운다. 애들 무덤은 모두 그대로였다. 그저께 밤엔 다시 파내 꺼내오고 싶었다. 

책상에 의자가 두 개인 것 말고는 찐빵이 흔적이 거의 없다. 낚싯대를 락스 소독해서 뒀을 뿐, 모두 버렸다.

내 방, 동생 방에 상자가 일곱 개 였던 것 같다. 방이 훤해졌다. 책상도 넓어졌다.

무덤 앞에 갔다 돌아서 오는데, 전에 엄마가 얘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하고 나도 부모님과 내 나이가 몇 살이 될까, 생각했던 기억이 났다. 성묘가 된 찐빵이 모습은 많이 상상했었다. 중성화하고 나면 많이 서운해 하려나, 언제쯤 하지, 여러가지 생각했던 기억도 났다. 장바구니에 담아 둔 먹을 거리, 이찐빵으로 입력해 둔 사이트, 그런 것들.

휴대폰 사진 설정을 보니 아이클라우드를 꺼놨길래 다시 켰다. 언제 고장날지 모르는 휴대폰의 사진들이 다행히 애플 계정에 저장됐다.


-어제는 자정부터 아침까지는 울었고 아침부터 저녁에 잠들 때까지는 속으로 욕을 했다. 밖으로도 좀 했다. 계속 머릿속엔 쌍자음이 떠다녔다. 대상이 있다가 없다가 하는 욕. 동물병원 험담도 하고 또 했다.

병원에 가서 진료실 테이블에 애를 내려놓고 주삿바늘 찌를 떄부터 였는지, 또 계속 몸이 떨렸다.

항문 수술할 때도 수술실에 모두 들어가고 대기실에도 다른 사람들이 떠나고 혼자 남았을 때 내가 벌벌 떨고 있다는 걸 느꼈다. 추운가, 긴장했나, 알 수 없었다.

지금도 떨린다. 반복해서 듣고 있는 이 노래도 한몫하는 걸까.




Posted by 오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