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범이네2018.02.24 11:10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148584


관련 포스트

http://binubaguni.tistory.com/466



-더하는 이야기


아파트 주차장에서 차에 치어 앞발을 다치고, 고통스럽게 죽어갔던 어린 고양이 샤론이가 생각난다.

이웃 주민 아주머니가 그걸 보고 아니 고양이를 저래 놓고 그냥 가면 어떡하느냐고 남성 운전자에게 말하자,

당신이 뭔데 나를 그딴 걸로 협박하느냐고 오히려 협박하더라던. 그리고 고양이는 죽었고, 그 운전자는 아마 아무 일 없이 아직 잘 지내고 있을 거다.


사람은 과실로 상해를 입혀도 죄가 되고, 특히 운전 중의 행위는 업무상 행위로 평가하는 형법과 관련 특별법에 의해 처벌되는데 반해, 동물보호법은 학대 등의 구성요건이 까다로웠다. 즉,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는 것. (많은 게 아니라 어쩌다 걸리라는 수준인 느낌. 그나마도 적용해 처벌하는 경우 극히 드문 듯.)

그러나 나는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에 대한 처벌도 분명히 필요하다고 본다.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과 미필적 고의 간의 거리가 과연 얼마나 멀 것인가,

그리고 그 결과는 얼마나 차이가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있다.


게다가 많은 사례에서 드러나듯, 동물학대범이 인간 역시 잔혹하게 대하는 경우가 많다. 대상과 시기가 다를 뿐.

최근 1심에서 사형을 판결받은 이영학도 딸 친구를 죽이기 전에 이미 개 여러마리를 잔인하게 죽였음이 뒤늦게 드러났다. 

동물을 이유 없이 잔인하게 죽이는 인간이, 주차장에서 뻔히 보이는 고양이를 치는 인간이,

무고한 우리 딸을, 아장거리는 내 새끼를 죽이는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걸 생각해야 할 거다.


대통령 공약 중 하나였던 만큼, 반드시 관련 법이 올바른 방향으로 개정되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오온이
분류없음2018.02.22 18:07



-오늘 아침에 찐빵이는 암컷인 걸로 결론 내렸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다른 고양이들은 넉 달 무렵엔 제법 수컷 태가 났었다.

땅콩도 제법 보이고 얼굴도 약간은 둥글어진다고 느꼈다.

찐빵이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고, 항문탈장 수술 때 회음부가 당겨 올려져 그렇게 보이는 걸로 생각됐다.


...그래도 오늘 대범이 쓰다듬으며 항문 쪽을 유심히 보긴 했다. 이전에 대범이 똥꼬를 관심있게 본 건 수리 낳았을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 아니었나 싶다...



-대범이, 수리는 둘 다 만났다. 다행히 밥도 잘 먹는다.

혹시 못 만날까봐, 혹시 입맛 없어할까봐 모두 두려워하고 있다.

언제든 누구든 나갔다 들어올 땐 "......봤어? 먹나?" 해 왔지만 지금은 더욱 그렇다. 

서로 고맙게도 오늘의 대답 역시 "아이고 이따만큼 먹고, 비벼대고...".


-연설이는 만나지 못하고 있다. 형제들이 모두 떠날 무렵부터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연설이도 죽었을 거야, 내가 묻어줘야지." 하면서 자꾸 찾아다녔다.

몇 번 생각하다가 "엄마, 이미 갔다면 자연스럽게 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잖아요. 원래 그런 거니까." 했더니

"어디 사람이 치울 법한 데 있으면 남들이 욕해. 그 꼴 당하는 거는 또..." 해서 수긍했다. 이미 애들 있던 곳은 다 보셨지만. 

또 나가신다기에 저도 같이 가요, 하고 나서는데 멈칫, "준비물은 안 가져가도 되겠지?"

시신 수습할 것들을 챙겨가야할까 해서 "없을 걸요. 혹시나 보면은..." "그래. 만약에 있으면..."

그렇게 또 먹을 것들만 들고 나갔다 왔다.


-그제 밤을 샜다지만 어제는 저녁 먹고 일찍부터 정말 열 시간은 잔 듯 하다.

그런데도 오전에 머리가 깨질 듯해 타이레놀을 먹었다.

그러고 점심 때는 방에 뒀다 미처 안 치운 닭가슴살, 츄르 봉지가 생각이 나 희석한 락스로 소독했다.

사후약방문이란 말이 딱이구나, 그 대청소할 때 이건 또 뺐었네, 그런 생각을 했다.

그 닭가슴살 츄르 담겨있던 큰 봉지도 씻어 베란다에 널어뒀다 보니 찐빵이 이빨 자국이 여럿 나 있었다.

그래서 요거 찐빵이가 깨문 자국이라고, 우리 찐빵이 작품이네, 하며 같이 웃었다. 그러고는 엄마는 조금 울었다.


-오전에 자꾸 코뽀뽀를 하는 내가 귀찮았는지, 양손으로 내 두 눈을 눌러 코뽀뽀를 저지하던 찐빵이 생각이 나서

귀엽고 우스워 웃었다. 그러고는 울었다.

아직은 자주 운다. 애들 무덤은 모두 그대로였다. 그저께 밤엔 다시 파내 꺼내오고 싶었다. 

책상에 의자가 두 개인 것 말고는 찐빵이 흔적이 거의 없다. 낚싯대를 락스 소독해서 뒀을 뿐, 모두 버렸다.

내 방, 동생 방에 상자가 일곱 개 였던 것 같다. 방이 훤해졌다. 책상도 넓어졌다.

무덤 앞에 갔다 돌아서 오는데, 전에 엄마가 얘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하고 나도 부모님과 내 나이가 몇 살이 될까, 생각했던 기억이 났다. 성묘가 된 찐빵이 모습은 많이 상상했었다. 중성화하고 나면 많이 서운해 하려나, 언제쯤 하지, 여러가지 생각했던 기억도 났다. 장바구니에 담아 둔 먹을 거리, 이찐빵으로 입력해 둔 사이트, 그런 것들.

휴대폰 사진 설정을 보니 아이클라우드를 꺼놨길래 다시 켰다. 언제 고장날지 모르는 휴대폰의 사진들이 다행히 애플 계정에 저장됐다.


-어제는 자정부터 아침까지는 울었고 아침부터 저녁에 잠들 때까지는 속으로 욕을 했다. 밖으로도 좀 했다. 계속 머릿속엔 쌍자음이 떠다녔다. 대상이 있다가 없다가 하는 욕. 동물병원 험담도 하고 또 했다.

병원에 가서 진료실 테이블에 애를 내려놓고 주삿바늘 찌를 떄부터 였는지, 또 계속 몸이 떨렸다.

항문 수술할 때도 수술실에 모두 들어가고 대기실에도 다른 사람들이 떠나고 혼자 남았을 때 내가 벌벌 떨고 있다는 걸 느꼈다. 추운가, 긴장했나, 알 수 없었다.

지금도 떨린다. 반복해서 듣고 있는 이 노래도 한몫하는 걸까.




Posted by 오온이
대범이네2018.02.21 05:55

​2017년 10월 27일, 너희 엄마인 대범이가 몇 시간 만에 날씬한 배로 찾아왔어.

그래서 네가 태어났음을 알았어. 


11월 11일 

낙엽 쓸어 버리면서 너희까지 버려질까봐 너희 엄마 보는 앞에서 내가 이사를 시켰어.

그때 처음 반하게 된 너.

정말 예쁘고 사랑스러웠어.


너희 엄마는 빈 방은 어떻게 찾아내서 차지했을까.

다리를 바들바들 떨면서도 아장아장 걷던 너.


어느새 컸다고 너희 엄마가 또 이사시켰지.

넌 작은 몸으로도 나무를 잘 탔었어.


신나게 뛰어 놀다가 형제들하고 공격 놀이도 하고.


공격받는 연두가 너보다 훨씬 덩치가 컸는데...

그래도 서로 훈련 상대가 잘 됐었어.


네 항문으로 빨간 장이 삐져나온 걸 봤을 때 깜짝 놀랐어.

많이 무서워할 걸 알지만 수술하면 너를 낫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병원에 갔었잖아.

그렇게 겁내고 싫어하던 네가 케이지 안에서 대기하는 동안 

문 앞으로 와서 내 손가락에 네 이마를 대고 있었어. '무서워요, 만져주세요...'하는 것 같았는데...


이때 수술은 잘 됐다고 했어. 조그만한 넥카라인데 네가 하고 있으니 꽤 커보인다.

며칠 새 살도 빠지고 털도 거칠어졌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렇게 집에 오고 첫날은 많이 울었잖아. 엄마도 없고, 형제들도 없고, 낯선 곳이고, 아프고...


그땐 구석으로, 구석으로...

내가 손을 뻗어 너를 쓰다듬고 엄마가 손을 뻗어 먹을 걸 주셨잖아. 너도 기억할까.


그래도 금세 좋아졌었어. 몇 시간 간격으로 움직이는 공간이 넓어지고, 그러다 방도 넘어다니고, 

저렇게 책상 서랍과 상판 사이 공간에 들어갔다 확 달려나오는 걸 참 좋아했잖아.

우리 잡기 놀이 하다가도 네가 저기 들어가면 일단 너를 기다리는 게 우리 집 룰이었다는 거, 너도 알지?


낚싯대 물고 와서 그렇게 째려보는 건, 어서 일어나서 놀아달라는 말인 줄 알아.

재미있는 표정으로 찍혔네. 


뭐니뭐니해도 찐빵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아빠가 짚풀 만지시는 거!

아빠도 짚풀 만지면 찐빵이랑 논다고 좋아서 꺼내셨어.


이렇게 끊어버린 바구니 기둥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지?


다 만들어 놓은 바구니보다 이게 더 좋다면서...몇 시간도 거기서 자곤 하던 너.


내 책상 위에서 자는 척 내 감시도 하고.

분명 이렇게 자고 있다가도 화장실만 가면 따라왔잖아.


바구니, 짚, 방석, 인형, 의자, 상자, 물어뜯을 수 있는 건 다 물어뜯고 놀았지? 


엄마가 인터넷에서 고양이 장난감이라고 봤다면서 뚝딱뚝딱 썰어주신 구멍 상자.

이걸로 놀 때 우리 정말 재미있었잖아.

첫날 이걸로 네가 두 시간을 놀아서, 엄마는 애 탈진하겠다고 상자 엎어둘까, 하셨었어.

덕분에 네가 아주 숙면을 취하는 것도 귀여웠는데.


그 구멍에 공 넣고 노는 게 재밌으니까 더 넣자는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밥 먹고 오니까 세 개나 넣어둔 걸 보고 많이 웃었어. 우리 찐빵이는 천재!


행거는 너의 구름사다리. 잡기 놀이의 필수 코스.


아프기 전 마지막 밤.

우리 찐빵이 무슨 꿈을 꿨을까.




-----

밤 중, 빠작빠작 건사료 씹는 소리가 났다. 시계는 10:25.

3분 뒤, 화장실에 가야겠어서 자리에서 일어나니 또 따라온다.

그리고 두 시간쯤 지났을까, 처음으로 토했다. 사료 덩어리와 아빠가 바구니 만드시는 짚을 뜯어먹은 조각이 나왔다.

그땐 몰랐다.

그리고 네 시간 됐나, 해 뜨기 전에 또 토하는데 이번엔 회충이 나왔다. 아, 세상에 하면서 얼른 구충제를 먹였다. 털이 꺼칠했다.

이후 또 노란 위액을 토했다. 약 먹인다고 구석에 들어갔다. 약국에 가서 피하 영양제(수액)를 사 왔다.

구충제도 토했을까 한번 더 먹이고 영양제도 놨다.

음식을 먹으려 하질 않아 주사기로 츄르를 짜 밀어넣었다.

회충 감염된 고양이도 이렇대요, 그렇게 엄마를 진정시키며 기다렸다. 아니 시간을 보내버렸다.

남들은 이 영양제 맞히니 벌떡 일어나 물도 먹고 밥도 먹었다는데, 나아지더라던데,

여덟 시간마다 맞히는 영양제를 초조해서 여섯 시간을 겨우 채워 다시 놓곤 했다. 

그런데 밤이 깊어질수록 한시간 간격으로도 토하기도 하고 눈에 띄게 배가 홀쭉해졌다.

약 먹이려다 입가며 몸이며 묻힌 약 덩어리가 굳어 털도 엉망이 됐다.

아침에 바로 병원에 가자, 싫달 힘도 없어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새벽이 됐다.

애는 욕실 나무 발판 위에 가 앉았다. 타일에 내려가 앉기도 하고, 발판 위에 올라오기도 했다.

욕실에 가 앉길래 욕실에도 물그릇을 갖다놨더니 계속 물그릇에 입을 댔다 뗐다를 반복한다. 

한 시 넘어 엄마가 교대하자 하셨고, 두 시쯤 됐을까, 욕실 앞에 누워 잠이 들었다가 깨니 어느새 다섯 시였다.

애는 눈에 띄게 상태가 나빠져 있었다. 다니던 병원은 진료시간이 오전 열 시. 그때까지 기다릴 순 없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볼 수 없을까, 인터넷을 뒤져 아홉 시 진료 시작이고, 미리 연락하면 조금 빨리 나와줄 수 있다고 휴대폰 번호를 공개해 놓은 병원을 찾았다.

고양이 진료에 대해서는 그 병원이 실력이 좋더라는 평들을 보며, 예전에 아는 사람이 그 병원에서 자기 고양이를 주사 맞히고 삼십 분 만에 발이 퉁퉁 부어 죽어버렸다던 일이 다시 생각났다. 그래도 대안이 없었다. 

우리 고양이가 토하고 물도 못 마시고 상태가 많이 나쁘니 일찍 봐주실 수 있느냐...

날이 밝고 답을 받아 병원으로 갔다.

보자마자 이미 상태가 너무 안 좋다고, 전염병이 도나보네요, 하며 키트 검사부터 하고 혈관을 찾는데 바늘이 제대로 들어가질 않는다.

그새 키트는 양성반응으로 나오고, 네 번을 찔렀더니 그 힘 없는 몸으로도 다리를 다 버둥거리고 돌아누우려 했다.

의사가 피하 수액을 가지러 일어서는 사이 다시 머리와 몸에 내 얼굴을 대고 많이 아팠지, 괜찮을 거야, 응 많이 아프지, 그런 말들을 했다.

일단 피하주사로 수액을 넣더니 다른 처치는 혈관 조금 커지길 기다려 다시 하겠단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수액으로 영양을 공급하고 항생제를 처방하는 정도로 버텨보는 방법밖에 없고

70퍼센트 정도는 사망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인터넷에서는 8-90퍼센트라던데, 의사가 우리를 덜 겁먹이려는 뜻도 있겠거니, 했다.

애는 처치받으며 있어야 하니 일단 돌아가시고 연락할 일이 있으면 연락해주겠다고 했다.

아, 혼자 스트레스 받을 텐데요, 겁낼 텐데...했지만 환자는 대기실 안쪽 별도의 공간에 있는 걸 보고는 돌아섰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머리도 다리도 아파 눈 좀 붙이고 갈까 하며 누웠다.

오늘이 마지막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현실일 것으로 생각치 않았다.

그냥 모두 무거웠고...인터넷 검색도 더는 하지 말자, 휴대폰 배터리와 음량만 체크하고는 모두 방에 누웠다.

그리고 휴대폰이 울렸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엄마가 찐빵이를 예쁘게 싸 주셨다. 내가 얼른 갖고 놀던 파란 인형을 앞다리 아래에 놨다. 엄마가 예쁘다, 좋다 하셨던 것 같다. 한지 두 겹으로 접어 싸고, 한 겹으로 겉을 한번 더 둘렀다. 그리고 가운데를 안동포 좁고 긴 천으로 둘러 리본을 묶었다. 싸인 모습은 고급스러운 선물 같았다. 수의나 사람 같은 장례식은 없었지만 엄마 나름의 예를 갖추는 것이 보였다. 안고 가서, 샤론이도 묻힌 그 해 드는 언덕에 땅을 파고 묻었다. 가느다란 나무 옆이었다. 엄마 아빠 나 모두 울며 보냈다.

이 글을 두드리는데 이젠 삼십 년이 다 돼 가는 할머니 장례식이 생각난다. 아, 작년 사촌 오빠도 갑자기 병이 들어 떠났다. 찐빵이 떠난 것도 꼭 같았다. 집이 무거워지고, 병원에 가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인간들의 형식으로 뭘 어떻게 하느냐, 여기로 저기로, 그리고 묻고 돌아서고 하는 그 시간과 모두의 눈물.


하도 오래전에 봤지만 어느 스님이 신문에 기고하시기를, 일곱살 아이의 화장한 유해를 뿌리는데 염불을 해 달라고 누가 왔었단다. 언덕에 서서 아이 유해를 뿌리고 목탁을 치며 염불을 외는 내내 아이의 아버지는 계속 참 많이도 울었단다. 스님도 내내 울며 목탁을 치고 염불을 하셨단다. 그 글은 사십구제 때 다시 볼 그 아버지가 덜 힘들기를 기원하며 이렇게 끝났던 것 같다. 태어나지 마라 죽기 어렵나니, 죽지 마라 그도 어렵나니......

내 기억이 정확치 않아 틀린 부분이 있겠지만 오래 마음에 남아 있었던 글이다. 검색으론 찾을 수 없었다.

많은 종교가 이 세상 삶이 어렵고 고통스러운 것을 말하고, 극락왕생하든, 천국으로 가든 영원히 자유롭게 떠남을 기원하는 것을 오늘 다시 생각했다.

숨쉬지 않는 작은 얼굴에 내 얼굴을 대고 미안해, 잘 가, 고마웠어, 사랑해, 잘 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미안해, 잘 가. 좋은 데 가. 

후회하지 않으려 했지만 '애가 몸이 약하니까 조금만 더 건강해지면' 하며 접종을 미루고, 토하는데도 기생충 때문일 거라고 하루를 집에서 보내버린 것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하필 무능하고 느린 내 눈에 반짝이며 들어온 생명.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으면 살렸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본 네가 그렇게 예뻤고, 항문탈장 수술을 해 우리 집에 왔고, 그 싫다는 병원을 또 데리고 가서 변비니 뭐니 주사를 맞힌 것들. 다 미안하다. 실밥 풀던 날도, 주사 맞고 온 날도 사람 손 못 닿는 구석에 들어가 거의 하루를 보내는 스트레스를 받게 해 놓고도 결국은 너를 보냈어.

장난감 물고 오고, 종아리에 매달려 놀자고 하고, 츄르 봉지에 가서 이거 먹겠다고 하고, 동영상 속 새를 잡겠다고 사냥 흉내를 내고, 내 다리 사이에서 자고, 이 방에 오라고 부르고, 밥상이고 옷장이고 어디든 뛰어오르고 파고들어가 놀던 너. 처음 수술하고 응가 눌 때 마다 소리를 지르면 내가 양 손으로 몸을 감쌌었지. 그렇게 같이 힘주며 똥 누고 항문 닦아주는 것에 금방 적응해 당연시 여겨 오히려 식구들을 웃긴 너. 모두 정말 사랑스러웠고 예뻤고 고마웠어.

잘 가. 벌써 좋은 곳으로 갔기를 빌어. 간 곳에서 행복하길 소원해. 다시 태어나고 싶거든 건강하고 좋은 환경에 살도록 태어나. 만약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으면 그때 다시 안고 사랑한다고 말할게. 




Posted by 오온이